♣방문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차 례
1, 생전에 어르신들이 하신말씀
2, 나 의 부 모 님
3, 저 의 부모님 사진들
4, 어 머 님 장 례 예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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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어르신들이 저에게 기억에
남도록 하신 말씀과 실천하신일
할머님 말씀
●"조선"에 없는 우리태야(서정호) !
(태야 : 태어날때 "태"를 머리에쓰고 세상에 태어났다고
집안에서 예명으로 부른이름/지금도 시골 고향에서는
어릴때 저를부르던 "태야"라는 이름을 더 잘 기억하고있음)
할머니는 손자(서정호)를 그토록 많이 아끼고 이뻐하셨으며
돌아가실때 까지 저를 데리고 주무셨을정도로
저에게는 유별나게 사랑을 듬북 주신분임.
"귀하게 키운자식이 큰사람이 된다"는 말씀을 늘 하시면서
할머니는 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키우실 정도로
귀하게 보살피고 아끼며 키워주신분임
제가 어릴적에는 무서움을 유독 많이 타면서 자란탓에
저녁에 무슨일을 할때면 할머니는 꼭 손 전등을 켜서들고 제가
볼일을 다볼때까지 옆에 계셔주셨던 우리할머니...
손자사랑이 얼마나 깊었으면 그렇게까지 하셨는지.
할머니의 그 깊으신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저가 있지않았나 감히생각합니다
할매 ,,너무너무 사랑하고 감사드립니다
아버님 말씀
●너는 모래사장에 내놓아도 살것이다 !
(모래사장은/모래 백사장을 의미하는것으로 생각되며
모래알처럼 아무리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강인한 세상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로 해석됨
특히 저에게는 잡초처럼 굳굳히 노력하여 성공하고
집안의 모범이 되라는 의미로도 해석됨)
●나는 죽어도 남의집에는 제사밥 먹으로 가지않을것이다!
(집없는 자식집에 가지않겠다는 뜻이며)
자식들이 남의집에 세들어 살지말고 검소하게
절약하여 생활하고 자식 모두가 자기집을
빨리 마련하라는 의미로 생각됨
아마도 아버님의 가슴속 깊은 생각으로는/
아버님 살아계실때부터 윗대어른 제사를 차남인 제가 모시고
있지만 언젠가는 큰집 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하셨을 것이고
그렇게되면 큰집 형님 형편이 어려우니 지혜롭게
잘 도와주라는 의미로도 생각됨
(아버지말씀 지금껏 실행했습니다/
저승에서는 이제 무거운 짐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요/
아버지 존경합니다)
어머님 하신일
●너 엄마는 평생을 허리한번 제대로 펴지않고
그 흔한 놀러 한번 다니지 않고
저렇게 일만 한단다 !
(주변 엄마친구분이나 동네어른들이 저를볼때마다 하신말씀들)
자식 잘되라고 가슴으로 기도하고 실천하신 우리엄마....
제가 군생활할때 아무사고없이 무사히 군생활 잘 마치도록
군입대부터 제대할때까지 2년8개월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물 한그릇 떠놓으시고 조상님께 지극정성
기도해 주신 우리어머니.
(제가 집안의 대들보가 되어 집안을 잘 이끌어
나가라는 가슴속 바램이 스며있었을 것임.)
어머니는 평생을 자신의 몸이 부셔지는지도 모르고 골병들게
일만 하시고 자식들 잘되기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묵묵히
말보다 실천하는 삶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신분임.
결혼후에는 둘째며느리(서정호.처)를 그렇게 이뻐하고
주변에 칭찬하면서 넉넉치못한 집안살림을 잘 이끌어나가시고
형제간 화목하게 만드신 엄마의 지혜로움이 돋보입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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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의 부 모 님
<서정호 씀>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으시고
보고 싶어도 이세상 어디에서도 볼수없는
우리아버지.엄마
많이 보고 싶습니다.......
논.밭일 하면서 그많은 고생 다하시고
날만 밝으면 자전거에 삽 끼워 타시고는 논두렁에 가셔서
많은시간 보내시든 아버님,,.
그렇게 논(畓)을 둘러보고 논 주변에 가시는게 좋으셨든가 봅니다.
아마도 평생을 논한마지기 없이 살아오신 한이 서렸던가 봅니다
"논(畓) 닷마지기만 사놓으면 너희 오형제 남의집에 쌀 꾸어로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며 논(畓)을 사라고 여러차례 말씀하시길레...
그한 풀어들일려고 문전옥답 (門前沃畓) 닷마지기(1.000평)
사 드렸드니 경로당과 온동네 어른들께 작은아들이 샀다고
바리바리 소문내고 자랑하고 다니신 우리아버지...
아버지.엄마의 그 각근면려(刻勤勉勵) 하신 삶의 철학을
잘 이어받아 성실하게 살도록 힘 쓰겠습니다...
궁핍한 살림탓에 아들에게 송아지라도 한마리 사달라고
저한테 애기하러 오실때는.. 깔깔하게 풀해서 다림질한
모시 바지저고리에 흰 나까오리 모자 쓰시고
전화국장실에 찾아오셔서 저를 찾을때는
그렇게도 멋져보이셨던 우리 아버지,,.
나는 너희들 오형제 키워 출가시키면서
한번도 고향(구미해평)에서 주변 친구들 대접할수있는
큰일(잔치)을 치뤄 보지를 못하겠구나...
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그바램(한)을 들어 드렸을때
그렇게 좋아하시며 "그래 야야 참 잘 결정했다만.
서울 사돈어른이 이해 하겠나 하고 걱정하시면서도"잘했다"
라고하시며 훤하게 웃으시던 아버님의 얼굴이 절로 생각납니다
(서울색시와 혼례를 치루다보니, 당시에는 서울에서
비포장된 시골까지 가서 예식을 치르도록
양가에서 결정하기가 무척 힘든 일이었음//
(당시 대구에서 구미해평까지의 국도가 비포장 길(48KM)이였음)
장인어른.장모님의 깊으신 이해와 사위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고개숙여 늘 존경 드립니다 )
대구에 사시는 고모님이 사주신 밭을 대리경작하시느라
한해곡식을 추수하면 일정량을 보내야하는 관계로
우리식구 한해 먹고살아야하니 팔아서 돈될곡식은 많지 않고.
그리하여 돈으로 줄것도 없었을 것이고...
추수한 고추라도 보낼요량으로 짐자전거에 두세푸데
(한푸데기가 2-30킬로는 족히나가는량) 한자전거 실으시고
해평에서 대구까지 48KM킬로미터 비포장도로를 세벽에 출발하여
실어드리고 저녁늦게 몸이 파김치가되어 돌아오셨던 아버지 ...
그 먼길을 짐실은 자전거로 다녀 오셨으니
얼마나 골병이 드셨겠습니까..
지금은 상상도 못할일인것을...??
어려운 살림 이끄시느라 몸이 부셔지도록 고생하신
아버지.엄마 너무너무 존경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중간"소"(牛)를 살찌우고 큰 소로 키워서
농사일 거들게 하기위해 이른봄부터
손이 트도록 나물캐서 소(牛)죽 끊여 먹이시든 우리엄마,
(당시에는 농기계가 없는시대라서
소(牛)가 없으면 논.밭일을 하지 못했음)
여름철 에는 세벽부터 이웃집 모내기 품앗이 하러가면
하루종일 허리한번 못펴시고 모심느라 골병드신 우리엄마,
겨울 땔감나무 장만하기위해서 코보산(시골집에서족히 10여킬로) 밑까지 그먼길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망태기로
땔감나무 해오신 우리엄마.
힘든 공수부대 갔다고..혹여 사고나 있을까봐
입대하고 제대한날까지 2년8개월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물한그릇 떠넣으시고 아들 사고없이 군대생활
잘 마치도록 조상님께 두손모아 빌고 빌어주셨던 우리엄마.
그은혜 무엇으로 다 갚겠습니까...
사진속 엄마 아버지께 "刻骨難忘"(각골난망)하여
고개숙여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드리지를 못하네요
봄이면 봄.여름.가을 .겨울. 사시사철 그렇게도
무슨일이 많으셨던 아버지,엄마,
평생동안 손발이 불어트고 온몸이 골병 들어가면서
일평생을 자식위해 입히고.먹이고 .공부시키고.
온몸으로 헌신만 하시다가 /하늘나라로 떠나신
아버지,엄마 의 "老牛砥犢"(노우지독)한 깊은뜻은
한없이 자랑스럽고.감사합니다..
아버님 좋아하시는 생두부 한모에 막걸리 한사발...
엄마 좋아하시는 닭고기에 , 명태국 .잡채.....
일평생 소고기.돼지고기 한점 드시지 않으시고 농사지은 상추.
배추와 시락국등...채식으로만 잡수셨든터라 몸에 군살하나없이
왜소하시면서도 당차게 일하셨던 우리엄마...
그래도 고기넣지앟고 오뎅넣어만든 잡체는 참 좋아하셧지요.
아버지.엄마 모시면서 오래도록 마음껏 넉넉히 그 흔한음식
많이차려 드리지 못한 불효자를 용서 하십시요...
너무나 죄송합니다
아버지 ,엄마!!!
"花香千理行 人德萬年薰"(화향천리행 인덕만년훈)
이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도
힘든었던 삶을 온몸으로 부딪치고 실천하며
뿌려 놓으신 삶의지혜와 .자식들에게
그토록 정성을 쏟으신 하늘같은
큰 은덕은 만년동안 향기가 나도록
후대에 길이길이 전하겠습니다
부디 극락왕생 하셔서
하늘나라 에서는 부디 .부디 일좀 적게하시고
편하게 쉬시길 두손모아 기도 드립니다...
(작은아들 정호(靑邱)올립니다 )
♠ 門前沃畓(문전옥답) :집앞에 가까이 있는 기름진 논.
♠ "刻骨難忘"(각골난망);고마움과 감사하는 마음은
뼈에 사무처 잊혀지지 않음.
♠ "老牛砥犢"(노우지독);어미소가 송아지를 핥다./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깊은 사랑이 담긴뜻.
♠"花香千理行 人德萬年薰"(화향천리행 인덕만년훈)
'꽃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덕은 만년동안 향기롭다.
♠ 刻勤勉勵(각근면려)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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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부모님 사진들
<아버지/엄마 동네 어른들과 여행 가셔서>
저의(서정호) 결혼식때 아버지.엄마 모습
(해평 농협예식장1982년도)
저의(서정호) 결혼식때(해평농협 에식장)
이때는 아버지들이 점촉을 하셨음
(뒤에는 형님 .여동생이 보임)
여동생 결혼식날(구미 문화웨딩)
둘째손자 (서수혁)백일날 ...아버지모습
엄마 생일날/시골집 에서
태조산 도리사 에서(엄마 담배피우시면서 담화)
시골집에서
손자(수혁) 돌잔치 ,,엄마모습
대구자택에서.식장으로 출발하기전) 엄마 팔순잔치때
대구 엘리제 예식장에서(팔순연)
작고 하시기 한달전 엄마 생전의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 일만하시다가 떠나신 우리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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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머 님 장 례 예 식
(경북대학병원 특1호실/2008.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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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어머님 장례시에 많은분들의 과분한 도움덕분에 무사히 장례를마쳣습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모든 지인분 들에게 고개 숙여 깊이 깊이 감사 드립니다
(靑邱 , 서정호 올림)
사모곡
금오산 노을질때 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화전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
땀에 찌든 삼베적삼 기워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따라 하늘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 한 밤을 지샙니다
무명치마 졸라메고 세벽이슬 맞으시며
한 평생 모진 가난 참아내신 어머니
자나깨나 자식위해 신령님전 빌고 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자나깨나 자식위해 신령님전 빌고 빌며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어머니 부디 극락왕생 하십시요--
<<<장례식장 모습/경북대학병원특1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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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및 노재 모습입니다>>>
운구(강석원본부장,손운주부장,김원식본부장,정성태본부장,조부장,배송학부장)
생
전에 아버지,엄마께서 놀러 다니신 해평 오상동경로당 앞마당에서 노제
평생을 생활하고 지내시든 생가방문
하관 / 위령제
49 재중 마지막제사(도안사)
묘지단장
형님 가족분
누나(서울)
저의 가족입니다
여동생 가족
선영에서 바라본 생전에 아버지.엄마가 사시든 마을전경(구미시 해평면 오상리(다사리)
end.............